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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봉불식 법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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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휴스턴교당 봉불식 법문 2)

오늘 휴스턴 교당 봉불식을 맞이해서 그동안 교당 신축과 봉불식이 있기까지 협력해주신 많은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정말로 의미가 깊은 날입니다. 부처님 인연법에 옷깃만 스쳐도 5백 생의 인연이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그것이 5백 ‘겁’의 인연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리고 하루 같이 동행하는 인연은 2천 겁, 같은 지붕 밑에서 잠 자는 것은 3천 겁, 부모 자녀 사이는 8천겁, 형제 자매는 한 부모의 포태속에서 나왔기 때문에 9천겁의 인연이라고 합니다.

이 교당은 어느 정도의 인연이 걸려서 탄생하게 되었을까요? 

무수한 겁을 통하여 수 많은 사람들의 염원과 원력, 서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이 교당은 불연지입니다. 중앙총부가 우리의 전법성지(轉法聖地)이지만, 이 불연지에서 수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고, 불보살들이 인연을 맺고 발아가 될 것이니 이 곳, 이 교당 자체도 전법성지라 할 수 있습니다. 

전법성지의 ‘전’자는 전할 전(傳)자가 아니고 구를 전(轉)자입니다. 여기서 같이 훈련을 하면서 법을 전하는 도량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곳에서 수 많은 성자가 나와야 될 것입니다.

또한, 이곳은 신앙하고 수행하는 도량이 되어야 합니다. 정산종사께서 기연편 11장에서 ‘과거에 모든 부처님이 많이 지나가셨으나 우리 대종사의 교법처럼 원만한 교법은 전무 후무하나니’라고 하시고, 

그 이유는 첫째, ‘일원상을 진리의 근원과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모시고 일체를 이 일원에 통합하여 신앙과 수행에 직접 활용케 하여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교당에서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과 수행이 삶 속에 녹아들어서 활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대종사님께서 100여년 전에 방언공사(간척사업: 바닷가에 둑을 쌓아 농경지로 만드는 일)를 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건설할 회상은 과거에도 보지 못하였고 미래에도 보기 어려운 큰 회상이라, 그러한 회상을 건설하자면 그 법을 제정할 때에 도학과 과학이 병진하여 참 문명 세계가 열리게 하며, 동(動)과 정(靜)이 골라 맞아서 공부와 사업이 병진되게 하고, 모든 교법을 두루 통합하여 한 덩어리 한 집안을 만들어 서로 넘나들고 화하게 하여야 하므로, 모든 점에 결함됨이 없이 하려함에 자연 이렇게 일이 많도다.”

과학만 발달해서는 절대 참문명세계가 될 수 없습니다. 

도학과 과학이 병진되고, 공부와 사업이 병진되어 참문명세계가 열리게 해야합니다. 이곳이 그런 도량이 되어야 합니다. 과거 종교는 이적을 많이 말씀하셨으나 대종사님의 교법은 인도상 요법입니다. 

종교를 믿는 것은 우리의 삶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종교의 핵심은 거기에 있습니다. 이 곳이 신앙 수행의 도량이 되어 기도를 하고, 법의 모임을 갖고, 훈련하고 소통하는 공간이 되어야합니다.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내가 어떤 흐름 속으로 들어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흐름 속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져버립니다. 신앙과 수행의 흐름에 들어온다는 것은 아주 지중한 인연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도량이 은혜와 상생선연의 도량, 사회정화의 원천수가 흘러나오는 도량이 되어야하겠습니다. 

옛날에 원평 어느 호숫가에 대산종사님을 모시고 갔는데, 비가 오니 호숫물이 흙탕물처럼 흐려졌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후에 다시 가보니 물이 맑아졌어요. 왜 그럴까요? 호수가 반드시 아무리 넓어도 어디선가 생수가 솟아나거나 맑은 물이 흘러들어오면 그 호수는 시일의 장단은 있을지언정 반드시 맑아집니다.

그러면 우리 사회에의 어디서 샘물의 역할을 해야할까요? 종교가 샘물의 역할을 해야합니다. 

특히 원불교 도량이 샘물의 역할을 해서 맑은 기운을 전달해야 합니다. 마음이 힘들거나 어리석은 생각이 들 때 여기에 오면 지혜를 얻고, 가정이 어려울 때는 공부로 화합해서 가정에 평화를 불러오고, 이곳이 적다면 적은 공간이지만 이 곳에서 세계평화의 원동력이 점진적으로 솟아서 번져나가는 샘물과 같은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방명록에 제가 대산종사님의 봉불의 뜻에 관한 법문 말씀인 시불(侍佛) 생불(生佛) 활불(活佛)이라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외람되지만 하나를 보태서 시방불(十方佛)이라고 썼습니다. 

일원상을 여기 교당에만 봉불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일원상을 내 안에 모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밖에 계신 것이 아니고 내 안에 하나님을 모셔야 합니다. 

부처님도 밖에 내놓고 모실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모셔야 합니다. 그렇게 내 안에 모시고 살다 보면 나도 부처가 됩니다.
오늘 봉불식을 맞이해서 일원상을 각자의 마음에 모시고 가서 삶이 풍성해지고 앞길이 훤히 열리기를 염원하면서 오늘 봉불식 말씀을 가름하도록 하겠습니다.


2022년(원기 107년) 10월 23일
죽산 미국종법사




나성인교무
◎1992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졸업
◎1996~2007 미국, 원불교 맨하탄교당 교무
◎2007~2010 휴스턴 American College of Acupuncture &Oriental Medicine 한의학 공부
◎2011~2021 Upstate New York
원달마명상센터 교무, 한의사겸직
◎2022 1, 원불교 휴스턴교당 주임교무 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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