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광대 - 가왕 조용필과의 추억-(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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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오백년> 이 그의 노래인생을 바꾸었다
조용필은 대마초 사건 이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가요계를 은퇴하고 일본으로 밀항할 생각까지 한다.
그러나 그는 음악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당시 조용필은 국가대표 축구팀에서 부동의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던 이회택과 친분을 쌓고 있었다.
‘조용필과 그림자’가 일하던 이태원 이스턴 호텔에 술을 마시러 왔던 이회택과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돼 있었다.
조용필보다 나이가 많았던 이회택은 불 같은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누구보다도 조용필의 음악을 인정하고 아껴주었기에 조용필은 그를 형처럼 따랐다.
조용필이 낙심해 있을 때 마침 이회택도 그 성격 때문에 국가대표에서 탈락하여 화를 삭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위로해 주는 마음으로 전국 해안을 도는 낚시여행을 떠났다.
이회택은 “낚시꾼이 찌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때를 기다리자. 사람은 누구나 슬럼프가 있기 마련이다. 이를 얼마나 잘 이겨내느냐에 따라 또 다른 길이 나타난다”면서 조용필을 위로했다.
어느 도시였는지 언제였는지 기억이 희미한 어느 날이었다. 낚시를 끝내고 저녁에 여관방에서 TV를 보던 조용필은 드라마의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는 민요 <한오백년>을 들었다. 온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그래, 바로 저 소리다!
그는 그 길로 서울로 올라와 판소리며, 민요며 우리가락이 수록된 음반을 닥치는 대로 샀다.
그리고 예전에 선배 김대환이 그랬듯이, 집으로 돌아와 방문을 걸어 잠그고 그 소리를 내기 위해 피나는 연습을 시작했다.
‘득음’을 하려는 소리꾼의 심정으로 전국 명산명찰을 돌면서 혹독한 수련을 했다. 하도 소리를 질러서 목이 붓고 침을 삼킬 수 없을 정도로 아팠지만 참고 또 참았다.
구처럼 모질게 연습하며 6개월쯤 지나니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더 이상 목이 아프지 않았다.
목에 근육이 생긴 느낌이었다. 어느새 조용필의 목소리가 타고난 미성과 독특한 탁성이 어우러진 누구도 가질 수 없는 목소리로 변해 있었다.
그는 자신의 밴드를 데리고 미친 듯이 음악에 몰두했다.
새벽 4시까지 온갖 취객을 상대로 밤새 노래한 뒤에도 다섯 시부터 아침밥을 먹을 때까지 노래하고 또 노래했다.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난 뒤에 다시 밤무대가 시작될 때까지 밴드들을 독려하면서 연습했다. 그는 그의 선배 김대환이 그랬듯이 게으름을 부리는 밴드 멤버에게는 매까지 드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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